오피니언
ㆍ전체기사
기사제보
광고문의

가장많이 본 기사
·경영지도사 및 기술지도사에 관한 법률, 국회 본 회의 통과 지도사회 35년만에 중기부 산하단체에서 법정단체로 새출발 ·세진이앤피(주), 신개념의 휴대용 공간제균 솔루션인 프레센AV1000을 출시한다. ·경영지도사 및 기술지도사에 관한 법률안, 특금법, 타다금지법 국회법사위 통과 본회의 심의만 남겨둬 ·[취업칼럼] 박종현 기자가 말하는 자소서 작성 핵심 꿀팁 7가지 ·[명리칼럼] '하이에나' 변호사 ·역려유행(疫癘流行).2 ·[신간소개] 베스트셀러 강광민의 비행기 증보판으로 새로운 비행 시작 ·브레인플랫폼 한국컨설턴트사관학교 공공기관 면접관 8기 30명, KBS면접관 1기 50명 동시 모집 ·역려유행(疫癘流行).1 ·[명리칼럼] 생명수인 물은 힘차게 흐르고 있다.
이메일 프린트 퍼가기 글자크기 원래대로 글자크기 크게 글자크기 작게
역려유행(疫癘流行).1
죽음의 습격
2020-03-01 오전 9:20:26 강문갑 기자 mail mkkang117@daum.net

    2003년 사스,2009년 신종플루,2015년 메르스에 이어,2020년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다가왔다.2019 12월 말,중국의 우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 우한폐렴 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정식 명칭을 세계 보건기구(WHO)COVID-19로 결정하였다.COVID-19 뜻은 CO는 코로나,VI는 바이러스,D는 질환,19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병이 처음 보고된 2019년의 19를 따서 명명하였다고 한다.COVID-19스패인 독감,H2N2(아시아독감),AIDS에 이어 판데믹(Pandemic:범유행 전염병)으로 발전할지를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더불어 교통수단의 발달과 이동이 급증함에 따라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전염병의 출현은 계속될 것이며,감염병 전문가들은 최악의 경우 중세시대 유럽 전역을 휩쓸며 유럽 인구의1/3을 몰살시킨 흑사병 재앙이 미래에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전염병을 돌림병,역병,역질,역려,온역,악역,독역 등으로 불렀으며,역병에는 두창(천연두).콜레라(호열자),홍역,이질,장티푸스(염병) 등 다양한 질환이 있었다.역병에 관한 최초 기록은,<백제본기> 온조왕 4년의 春夏旱饑疫(춘하한기역: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어 흉년에 전염병이 돌았다)”의 기록이며,구수왕(재위:214~234),근구수왕(375~384)때에도 대역이 유행했다는 기록이. <고구려본기>에 의하면 천왕(248~270),소수림왕(371~384),안원왕(531~545),영양왕(590~618)때에도 대역이 있었고,535(안원왕 5) 기사에는 겨울에 大疫(대역:전염병이 크게 돌았다)”고 기록하였다.이때 발생한 전염병은 북위(386534)의 멸망으로 유이민의 유입에 따른 것이었다.

                                    <전염병별 방역 및 관리>

    <신라본기>에 따르면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후,661년 큰 역병이 돌아 벽제에 통제할 병력을 파견하지 못할 정도였으며,747(경덕왕6) 기사에는“民饑且疫 (민기차역:백성들이 굶주리고 또한 전염병이 돌았으므로,出使十道安撫(출사십도안무:사방에 관리들을 파견하여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위로하였다고 기록하였다.신라37대 왕인 선덕왕(780~785)46대 왕인 문성왕(839~857)은 역진(疫疹)으로 죽었으며,867(경문왕 7) “京都疫(경도역:경주에 전염병이 돌았다)”.870(경문왕 10) ”國人多疫(국인다역:백성들이 전염병에 많이 걸렸다)”.873(경문왕 13)”民饑且疫(민기차역:백성들이 굶주리고 또한 전염병이 돌았다)”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8~9세기 신라는 전염병으로 곤혹을 치루었다.


    신라 헌강왕(875~885)때 처용이 지은 ‘처용가(處容歌)’는 역병으로 불리던 감염병을 예방하고자 하는 소망을 드러낸 향가라 하겠다.서라벌 밝은 달에 밤늦게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둘은 아내의 것인데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 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처용가는 아내의 간통을 애통해하는 남편의 마음을 시로 읊은 것이라는 해석이 대부분이지만,역병의 범람을 슬퍼하고 인내하는 의미도 담겨있다.아내의 부정은 곧 역병이며,‘본디 내 것’이란 표현은 역병이 ‘내 몸이 만들어낸 병’이라는 의미로,아내와 역신(疫神)의 동침을 지켜본 처용이 노래하며 춤을 추자.이에 역신이 처용의 관용에 감동하여 처용의 얼굴만 그려놓아도 그곳에는 침입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물러갔다.그 소문이 돌고 돌아 역병이 돌면 처용의 얼굴을 벽과 대문짝에다가  붙이는 것이 유행하였다.

    <처용>


    고려시대 전염병 주원인은 거란,여진,몽골 등과 의 전쟁이었다.이민족과의 전쟁에서 전염병이 전파되어 전쟁보다 역병으로 죽은 자가 더 많았다.특히 군사작전시 지역 간의 이동이 있거나 외국 군대와 접촉하는 경우,낯선 지역의 풍토병에 노출되어 감염되기도 하였다.1018년 개경에 유행된 장역은 요나라와의 전쟁으로,1279년에는 오염된 토양 또는 다른 물질 속에서 독성을 유지한 세균의 감염에 의해 발생한 탄저병은 몽골과 접촉에 기인된 것이다.1281(충렬왕7)에는 일본 정벌을 위해 파견된 여몽 연합군 내에서 전염병이 창궐하여 일본 정벌군 9,960명 초공,수수가 17,029명이었는데 그 중 살아서 돌아온 자가 19,397명이다”라고 하였다.



    경종(975~981), 덕종(1031~1034), 예종(1105~1122)과 인종(1122~1146)은 두창이나 홍역같은  질진(疾疹)으로 사망했다고 한다.1123년 예종사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에는 별궁이 거의 비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궁궐도 역병으로 초토화가 된 것이다.12세기 고려는 역병의 시대였다.1100년부터 중국에서 전염되어 온 온역(溫疫)’이라는 큰 역병이 돌아 고려 예종 4(1109)에는 개경거리에 시체가 넘쳐났으며,1110(예종5)에는 시체가 길에 널릴 정도로 심각했다고 한다.1122(예종 17)에 학질로 많은 사람이 죽어,길거리에 널린 시체를 땅에 묻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연유로12세기 화려한 꽃을 피우던 고려청자는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들어 급격한 쇠퇴를 거듭한다.지난 2007 6월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23,000점 역시 12세기 중엽 강진 가마에서 생산된 고려청자를 가득 싣고 수도 개경으로 가던 배가 태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중국에서 들어와 개경을 초토화 시켰던 역병이 청자선을 타고 강진까지 내려와 강진의 청자생산기반을 초토화 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려시대에는 역병이 창궐시 약재 처방과 같은 치료행위에 더하여 각종의 종교적 의례·신앙 행위가 동반되었다.국가적으로 거행된 불교 의식은 반야도량,점찰회,경행 등 의식이 다양했지만,전염병을 물리치기 위한 의식은 반야경을 읽는 반야도량으로서 예종 4(1109) 15(1120)에 반야도량을 개설하여 전염병이 사라지기를 기원하였다.


    <강문갑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저작권자©서울데일리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0-03-01 09:20 송고
    역려유행(疫癘流行).1
    대표인사말 | 광고/제휴 안내 | 이용약관 | 청소년보호정책 | 개인정보처리방침
    서울데일리뉴스 등록번호 : 경기 아51976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미금일로90번길 32, 335호 (구미동)   TEL : 031-604-2221
    발행인 : 정미숙, 편집인: 박선철,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선철
    Copyright© 서울데일리뉴스. All right reserved. mail to : scottie_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