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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려유행(疫癘流行).2
끝나지 않은 전쟁
2020-03-04 오전 12:00:57 강문갑 기자 mail mkkang117@daum.net

    조선이 개국한 1392년부터 일제강점기인 1917년까지 526년간 조선에서 발생한 감염병은 대략 1,455건으로.최초 기록은 1393 3,조선 최대의 왕실 사찰이자 태조 이성계의 별궁이었던 양주 회암사에서 역질이 수개월 동안 계속돼 스님들이 다수 희생된 기록이며,1396(태조 5)3월에도경축성역부 역려유행(京築城役夫 疫癘流行) 도성을 쌓기 위해 소집된 인부들이 크게 유행한 전염병에 걸렸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 29(1447) 6월에 발생한 돌림병으로 4,0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고 전한다.1524(중종 19)에는 평안북도 용천군 지역에 전염병이 돌아 황해도까지 전염병이 확대되어 23,000 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용천 지역 전염병은 어쩌면 여진족 사이에서 돌고 있었던 전염병이었을지도 모른다.중종(1506~1544)대조선의 인구는 400만명 전후로 전체인구의 0.6% 해당하는 인구가 사망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전염병 기록>

    임진왜란 중에도 조선수군 사이에 역병이 돌았다.1593 3,남해에 전염병이 번졌을 때 이순신 역시 12일간 고통을 겪어야 했다.1594 4월 이순신이 조정에 올린 보고서에는 전염병 사망자가 1,904,감염자는 3,759명으로 전체 병력 2 1,500명의 40%가량이 전투력을 상실한 상태였다.다시 전염병이 창궐한 1595년 수군 병력은 4,109명까지 감소했다.당시 왜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수군은 150명인데 전염병으로 1,904명의 목숨을 가져갔다.이에 이순신 장군은 여제(나라에서 역질이 돌때 여귀에게 지내던 제사)를 드려 수군들의  안위를 살폈다.


    1670년부터1864년까지 약 200년 동안 역병으로 10만 명 이상 사망한 경우가 여섯 차례나 있었다. 1670(현종11) 부터 1671(현종12)까지 대기근으로 전염병이 창궐하여 전염병에 걸린 52,000여 명중23,000여 명이 사망하였으며,1671 1,<현종실록>기사에는 임금의 다섯째 누이인 숙경공주까지 마마병에 걸려 사망하니 급기야 2 2일 임금은 왕대비,세자와 함께 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전염병의 기세가 다소 꺾인 4월에 다시 창덕궁으로 돌아왔다.팔도에 기아와 여역,마마로 죽은 백성을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기술하였다.


    숙종 10(1683) 숙종이 천연두에 걸렸다.첫 부인인 인경왕후 김씨를 천연두로 잃은 숙종을 살리기 위해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이 알려 준 황당무계한 처방에 따라 한겨울에 소복 차림으로 물벼락을 맞았다.이로 인해 병을 얻어 12 5일 사망했다.1750(영조 26)에는 역질이 발생해 경기와 황해도를 거쳐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1 5일 실록에는 "팔도에 전염병이 치성하여 죽은 자가 즐비하다" "시신을 묻는 일이 큰 일"이라며 서술한다.사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1 11,692,2 6,233,3 37,581,4 25,547,5 19,849,6 30,300,7 22,261,8 224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월별 실록에 집계된 희생자수만 합쳐 155,709명이다.1798(정조 22)말에서 1799(정조 23)초까지 전염병으로128,000 여 명이 사망하었다.


    1821(순조 21) 8월 새로운 전염병인 ‘콜레라’로 중부지방을 통과해 제주도까지 유행하여 고관대작을 비롯하여 백성들이 열흘도 되지 않아 10만 명 이상 희생되었고,1859(철종 10)에도 콜레라가 창궐하여 40여만 명이 희생되었다.<증보문헌비고>에 기록된 조선의 인구는 1807 (순조7) 7,561,463명에서,1835(헌종1)에는 6,616,407명으로 약100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줄었다.인구 감소의 주된 원인은 역병과 기근으로 인한 것이며,전염병은 조선에 전쟁보다 더 큰 피해를 입혔다.일제강점기<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의하면,191810월부터1919 2월까지 약 16주 동안 창궐한 스페인 독감(무오년 독감)으로,당시 조선 전체인구 16,783,510명 중 절반에 가까운 7,242,113명이 감염돼 139,128명이 희생되었다.



    역병이 유행하면 기본적으로 환자와 격리 조치였고,한양에 역병이 발생하면 환자나 시체를 도성 밖으로 추방하는 방식이었다.성 밖에서 역병에 걸린 환자를 전담하던 곳은 활인서(活人署),이들에게는 의원과 함께 의무(醫巫)를 배치했다.치료방법을 책으로 편찬하여 전염병이 발생한 곳에 내려 보냈고,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죄가 가벼운 자는 방면하였으며,죽은 자는 시신의 매장과 제사까지 지내주었다.


    인류역사에 수많은 세균과 바이러스가 등장했다.지금까지 존재가 확인되고 규명된 바이러스의 종류는 5천만 개 정도이며,아직까지 알지 못하는 바이러스의 수는 무한할 것으로 추정된다.생존과 번식은 생명체의 본능이다.세균·바이러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인간은 유일하게 천적이 없는 종으로 생태계를 지배해 왔으나 이동수단의 발달로 인한 세계화,야생동물을 먹는 음식문화,기후변화와 인구의 고령화 등으로 인류의 천적은 바이러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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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서울데일리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0-03-04 00: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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