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ㆍ전체기사
기사제보
광고문의

가장많이 본 기사
·경영지도사 및 기술지도사에 관한 법률, 국회 본 회의 통과 지도사회 35년만에 중기부 산하단체에서 법정단체로 새출발 ·세진이앤피(주), 신개념의 휴대용 공간제균 솔루션인 프레센AV1000을 출시한다. ·경영지도사 및 기술지도사에 관한 법률안, 특금법, 타다금지법 국회법사위 통과 본회의 심의만 남겨둬 ·[취업칼럼] 박종현 기자가 말하는 자소서 작성 핵심 꿀팁 7가지 ·[명리칼럼] '하이에나' 변호사 ·역려유행(疫癘流行).2 ·[신간소개] 베스트셀러 강광민의 비행기 증보판으로 새로운 비행 시작 ·브레인플랫폼 한국컨설턴트사관학교 공공기관 면접관 8기 30명, KBS면접관 1기 50명 동시 모집 ·[명리칼럼] 생명수인 물은 힘차게 흐르고 있다. ·사라진 글자들
이메일 프린트 퍼가기 글자크기 원래대로 글자크기 크게 글자크기 작게
사라진 글자들<제2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비문
2020-03-17 오후 12:21:27 강문갑 기자 mail mkkang117@daum.net

    비문 399년 기사(2 6 31~7 33):영락 9년 기해,백잔이 맹세를 어기고 왜와 화통하였다.왕이 평양으로 내려가 순시하였다.그때 신라왕이 사신을 보내어 왕께 아뢰기를 "왜인이 국경에 가득차 성지를 부수고 노객을 왜의 민()으로 삼으려 하니 왕께 귀의하여 구원을 청합니다."라고 하였다.(원문:九年己亥百殘違誓倭和通.王巡下平穰.而新羅遣使白王云.倭人滿其國境破城池以奴客爲民歸王請命) 


    비문 400년 기사(2 8 9~9 24):영락 10년 경자,교시를 내려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였다.거성에서 신라성까지 왜인이 가득하였다.관병이 이르자마자 왜적들이 물러가거늘 관병이 신라로 하여금 뒤를 쫓아가 샅샅이 잡아오니 임나에서 가라까지 성을 빼앗았다.(원문:十年庚子敎遣步騎五萬往救新羅.居城至新羅城倭滿其中.方至倭賊退.官兵由新羅躡踵追來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城卽歸服) 


    위 비문 이,많은 글자가 집중적으로 훼멸되었다.이는 일본인들에 의해서 광개토태왕릉비가 크게 훼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훼멸된 글자는 광개토태왕이 신라를 침략한 왜를 정복하는 내용으로,당시 피해의 당사자였던 일본인들이 고의적으로 글자들을 훼멸한 것으로 추정된다.

    1895 5,계연수 선생이 광개토왕비문을 답사한 후 비문 내용을 적어 둔 것이 있었는데,1912년에 다시 답사하였을 때 비문이 일부 훼손되어 전과 다른 것을 보고,1895년 답사때 적어 두었던 내용을 참고하여 비문징실(碑文徵實)을 만든 것이 있다.계연수 선생은 일본경찰에 의해 사지가 잘린 채 압록강에 던져졌다고 하는데,그 이유는 아마 일제가 비문의 있던 글자를 없애버리기 전에 원본 글자를 먼저 입수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운초 계연수 선 생의  광개토대왕 비문  진실을  기록한  < 비문징실(碑文徵實)> 에 기록된  비문 400년 기사 (2 9  25~10 22):안라인 수병이 신라의 성을 빼앗았고 염성의 왜구를 크게 무찔렀는데, 성에서 아군의 공격을 크게 당하여 남김이 없어지니,왜가 드디어 나라를 들어 항복해왔으며,죽은 자가 열에 여덟아홉이요 남은 신하들을 모두 데리고 왔다.(원문:安羅人戍兵.拔新羅城鹽城倭滿倭潰城大被我攻盪滅無遺倭遂以國降死者十之八九盡臣率來) 


    비문 400년 기사(2 10 23~32 4):“안라인 수병이 가득차서 거짓으로 왜병이 감히 전투에 참여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여 훼기탄과 탁순의 모든 적들이 모의하고 다시 거병하니,관병이 먼저 억제하여 바로 탁순을 아우르고 그리하여 좌군은 담로도로 해서 단마에 이르고 우군은 난파를 지나서 무장에 이르자 왕께옵서 직접 배로 축사에로 건너시니 모든 적들이 죄다 스스로 무너지게 되었다.이를 나누어 군과 국(식민지 나라)으로 만들었다. (원문:安羅人滿假改慮倭欲敢戰與喙己呑卓淳諸賊謀再擧官兵制先直取卓淳而左軍由淡路島到但馬右軍經難波至武藏王直渡竺斯諸賊悉自潰 分爲郡)

    <광개토태왕 남정>

    비문 400년 기사(325~36):안라인 수병은 예전에 신라 임금이 아직 직접 조공하지 않다가 이제 조정에서 배알을 시작하고 광개토호태왕께서 능히 가르쳐 인도하시니 모두 와서 신하와 종이 되었으며,구다라 또한 와서 조공을 하였다.(원문:安羅人戍兵.昔新羅寐錦未有身來朝貢今始朝廣開土境好太王能以德濟化咸來臣僕勾茶川亦來朝貢)


    비문징실에 의하면,210행과,3 1행에 적혀 있는 문구는 광개토왕이 대마도왜,구주왜,대화왜를 정복한 내용이다.2 9"관병이 급히 쫓아 임나가라에 이르러.." 문구 중 임나가라는 여러 가라 중의 하나로 대마도를 가리키는데<환단고기>에서 임나는 대마도이며,삼가라로 나눠서 고구려,백제,신라가 통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일본서기>숭신천황 65년 조에 임나가라의 위치를 알려주는 명확한 기록에서 후쿠오카로부터 북쪽 바다로 2천리에 임나가 있다고 한다.

    <대마도 삼가라>


    사료를 종합하면 임나가라는 대마도를 의미하며,고대에는 경상도,대마도,일본열도를 변두리에 있었다고 모두 가라라 불렀다.”안라인술병(安羅人戍兵)”에서 안라는 원래 홀본 즉 졸본인들로 후에 임나로 편입되어 일찍부터 고구려와 화친을 맺었다.큐수에 있었던 안라국 사람들은 고구려 졸본에서 이주를 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광개토태왕이 대마도,큐수,혼슈를 정벌후 안라인으로 수비와 치안유지를 맡겼던 것이다.



    <강문갑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저작권자©서울데일리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0-03-17 12:21 송고
    사라진 글자들
    대표인사말 | 광고/제휴 안내 | 이용약관 | 청소년보호정책 | 개인정보처리방침
    서울데일리뉴스 등록번호 : 경기 아51976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미금일로90번길 32, 335호 (구미동)   TEL : 031-604-2221
    발행인 : 정미숙, 편집인: 박선철,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선철
    Copyright© 서울데일리뉴스. All right reserved. mail to : scottie_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