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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글자들<제3부>
팍스 코리아를 꿈꾸며
2020-03-19 오전 12:00:59 강문갑 기자 mail mkkang117@daum.net


    <단고기 고구려국본기>기사 일단 스스로 바다를 건너서는 이르는 곳마다 왜를 격파하였다.왜인 백제를 돕고있었다.백제가 왜와 밀통하여 왜로 하여금 신라의 경계를 계속 해서 침범하게 하였다.몸소 수군을 이끌고 웅진,임천,와산(보은),괴구(괴산),복사매(영동),우술산(대덕),진을례(금산),노사지(유성)등의 성을 공격하여 차지하고,도중에 속리산에서 이른 아침을 기해서 하늘에 제를 올리고 돌아오다. 광개토태왕의 정벌이 끝난후에 백제,신라,가라의 여러 나라가 모두 조공을 끊임없이 바쳤다.임나(任那)와 이(),()의 무리는 신하로서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고구려전성기 영토>

    (원문:一自渡海所至擊破倭人倭人百濟之介也百濟先與倭密通使之聯侵新羅之境.帝躬率水軍攻取熊津林川蛙山槐口伏斯買雨述山進乙禮奴斯只等城路次俗離山期早朝祭天以環時則百濟新羅駕洛諸國皆入貢不絶契丹平凉皆平服任那伊倭之屬莫不稱臣)

    임나는 대마도 왜를, ()는 이세(伊勢)와 대화(大和)등지의 대화 왜를,왜는 구주왜를 지칭한 것이다. 따라서"임나와 이(),왜의 무리는 신하로서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는 문구는 대마도왜, 대화왜, 구주왜가 모두 광개토태왕에게 복속하였다는 뜻이다.

    비문404년 기사:“14년 갑진년에 왜가 법도를 어기고 대방지역에 침입하거늘 왕께서 수군을 거느리고 석성도로부터 배를 연결시켜 진을 치고 바다 길을 지배하는 한편 장수를 보내 평양을 굳게 지키게 하시며,왜구의 자취를 밟아 서로 만나게 되자 왕의 친위대가 적의 허리를 끊고 깨끗이 쓸어버리니 왜구가 궤멸되었는데,참살된 자가 수없이 많았다.”(원문:十四年甲辰而倭不軌侵入帶方界王率水軍自石城島連船結陳以制海將戍守平壤軍直欲戰相遇王盪刺倭寇潰敗斬煞無數)

     

    위 비문에서 왜()가 아닌 ‘도적떼’인 왜구(倭寇)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404년 기사에서 고구려 대방에 침입한 왜구는 왜의 정규군이 아니라 왜왕의 통제를 받지 않는 해적무리들인 것이다.400년 왜 정벌시 광개토태왕은 왜왕을 응신(應神)에서 인덕(仁德)으로 교체하였으며,404년 대방에 침입한 왜구에 대해 왜왕 인덕은 사신을 보내 사죄헸다는 기록이 남당 박창화 선생의<고구리사초략>에 실려있다.

     

    지금까지 비문기사 및 사료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고구려가 백제·임나가라·왜를 격파했을 뿐만 아니라,전쟁수행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묘년 기사 渡海破의 주어가 되어야 한다.더불어 신묘년 기사에서 왜가 백제·신라를 파하여 신민으로 삼았다고 가정한다면,396년에 광개토왕이 수군을 지휘하여 백제를 토벌했고,백제 아신왕은 무릎을 꿇고 이제부터는 영구히 고구려 왕의 노객(奴客-)이 되겠다고 항복할 때,왜병이 출현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며,399,“백제는 맹세를 위반하고 왜와 더불어 화통하였다” “신라왕이 사신을 보내어 아뢰기를 왜인들이 신라 국경에 가득 쳐들어 와서”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이는 백제·신라가 왜에 정복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이다.

     

    일제 식민사관이 조작한 한반도 임나일본부설은369년에서 562년까지 약 200년간 인데,임나일본부를 두어 200년간 지배했다는 것은 허구이며 논리적 모순임을 입증하는 것이다.또한<일본서기>에는 신공왕후 40(249)에 백제와 함께 신라를 공격하고 가야의 일곱 나라를 평정했다는'가야7국 평정'249년으로,일본이 주장하는 369년과는 무려 120년의 오차가 발생한다.광개토태왕비에 나오는 신묘년을 120년이나 끌어 올려 신공황후의 허구 역사기록으로 꿰어 맞추었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임나일본부 폐기 기사(2010년)>


    일본 학자들도 우리 측의 주장에 동의를 하여 2010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임나일본부 용어를 쓰지 않기로 합의했지만,아베정권은 임나일본부설을 재주장하며 일본 역사 교과서의 절반 이상이 임나일본부설을 기록하고 있으며,일부 극우 사학자들은 임나일본부라는 단어만 언급하지 않을 뿐 "임나는 한반도 남부 땅에 있었다,임나는 가야다"라는 프레임을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는 형국이다.

    <좌:아베의 역사왜곡/우:일본교과서에 실린 4세기말 역사왜곡 지도>


    <환단고기>가 알려진 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아직도 위서론에 휘말려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현재까지도 광개토대왕비의 정확한 문자 판독이나 내용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지만,풀지 못하고 있는 난제들은 일본이 불법으로 강탈하여 일본왕실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우리 고사서의 회수를 통해 대한민국의 고대 역사를 모두 복원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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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서울데일리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0-03-19 00: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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