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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청망청 중전 민씨,배고픈 人民
갑신정변 이후 잃어버린 10년
2020-07-05 오전 1:19:50 서울데일리뉴스 강문갑 mail mkkang117@daum.net


    갑신정변이 청군에 의해 진압된 후,1885 3 4일에는 청국 이홍장과 일본측의 이토 히로부미 사이에 조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조선에 대한 공동철병권과 공동파병권을 명시한 천진조약이 체결되었다.한편 조선은 청의 강압적 내정간섭에 시달렸고,외교활동 또한 청의 영향력 아래 진행되었으며 고종의 군주권 행사도 철저하게 제약을 받았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고종과 중전 민씨는 청의 간섭을 배제하고 권력유지를 위해 러시아의 군사적 보호를 요청하는 조러밀약을 추진하였으나 밀약내용이 청국에 알려져 청국은 고종과 중전 민씨를 견제코자 임오군란 후 납치되었던 흥선대원군을 귀국시키기로 하였다.


    1884 5월 러시아와 수호조약을 체결한 조선은 갑신정변이 발발한 이후 비밀리에 밀사를 파견해 러시아와 비밀교섭에 들어갔다.러시아 세력의 한반도 진출 가능성이 나오면서 영국은 극동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18853 1일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해밀턴 항이라고 부르며 러시아의 한반도 세력확장 저지에 직접적으로 나섰다.거문도사건을 계기로 한반도 사정이 청·일본·러시아·영국 등의 4강에 포위당하는 듯한 형국을 보이게 되자 조선 중립화론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그러나 조선 조정은 중립화론에 부정적이었고,천진조약에서 조선에 대한 공동 출병과 공동철수를 보장하여 세력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론만 벌이다가 유야무야 되었다.


    <좌:영국 군인들이 거문도 주민들과 찍은 사진/우:최초의 테니스장>



    한편 대원군의 귀국으로 정치적 입지가 약화될 것을 염려한 고종과 민씨 척족세력은 1885 4월 민영익을 천진에 파견하여 대원군의 석방을 저지시키려 하였고,중전 민씨는 러시아 공사에게 흥선대원군 귀국 반대에 힘써 달라는 밀서를 보냈으나,원세개의 정치적인 계산으로 흥선대원군이 1885 8월 제물포에 도착하였다.이날 7000~8000여 명의 인파가 대원군을 환영하였고,운현궁에 도착한 후에도 10여 일 동안 인파가 들끓었다.고종은 남대문까지 나와 대원군을 맞이했지만 이런 대원군이 부담스러웠던 고종은 1885 9 10,대원군이 칩거하는 운현궁 대문에 차단봉을 설치할 것과 조정의 신하들은 명을 전하는 것 외에는 사적으로 만날 수 없도록 명하였다.


    1887년 영국과 러시아,청나라 3자간 합의로 영국이 거문도에서 물러가긴 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은 팽배하면서 어느 누구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형국이 됐다.1889~1891년 기간은 세계적으로 가뭄 피해가 심해 곡물 사정이 어려웠다.지금의 한일 무역분쟁과 유사한 사건이 1889년에도 있었는데, 이때는 일본이 아니라 조선이 수출규제를 단행했다.18899,함경도 관찰사 조병식(1823~1907)이 원산항을 통한 함경도산 콩 수출을 1년간 금지한 방곡령사건이었다.조병식이 방곡령을 내린 이유에 대해 순수하게 평가하는 자료는 드물다.이미 조선왕조 말엽에 방곡령은 지방수령들이 의도적으로 지역 곡물가격을 하락시켜 매집한 이후, 다시 고가에 파는 재테크를 위한 수단으로 주로 쓰였다.


    당시 방곡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1883년 일본과 체결한 조일통상장정에 따라 방곡령 개시 1개월 전에 일본에 통보해야했다.조병식이 함경도에 방곡령을 내린 것은 1개월 전이었으나,조정에 보고된 이후 이를 일본에 직접 통보하는데 오랜 시간이 지체되면서 결국 1개월을 넘겨 일본에 통보됐고,곧바로 일본정부에서 항의했다.이에 조정에서는 조병식에게 방곡령을 해제하라 지시를 내렸지만,조병식은 조정의 지시를 거부하고 방곡령을 이어가면서 일본 상인들의 곡식까지 압수해버렸다.조병식이 조정의 명령까지 거부하며 독단적으로 밀고나간 이유는 자신과 연결된 지역 상인들을 통해 방곡령으로 곡물가를 조작해 벌어들이는 이익에 손실이 갈 것을 우려한 것으로 추정된다.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뒷배인 청군을 믿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좌:군산항에 야적한 쌀가마니/우:일본제품 불매운동 동참>



    1884년 갑신정변 이후 일본은 청나라와의 군비경쟁에서 아직 밀린다는 판단하에 조선 정책에 대해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던 터라 이 일이 국제 분쟁으로 비화될 것이라 생각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일본은 예상과 달리 매우 강경하게 나왔다.일본 조야에서는 청과의 일전을 각오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주전론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이에 조선에서 또다른 분쟁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청국의 요청에 따라 조선조정은 조병식을 강원도 관찰사로 발령내 쫓아버리고,일본에서 요구한 배상금 11만엔은 조병식에게 직접 물도록 지시했으며,함경도의 방곡령은 해제했다.결국 방곡령사건은 탐관오리의 전횡을 막지 못한 조선왕조의 총체적 무능과 영국과 러시아란 거대 세력간의 알력을 이용한 일제의 공격적인 대외정책이 빚은 비극이었다.


    청국과 일본,러시아 3국이 상호 견제를 하면서 조선을 노리고 있는 동안 대원군은 유폐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고,중전 민씨는 척신들이 보호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태평세월이었다.개항 이후 열강들과 관계를 위해 필요한 경비,궁궐의 예산낭비 등으로 국가재정은 갈수록 궁핍해졌다.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담시켰고,지방관들의 횡포는 극에 달했다.오스트리아 출신 헤세바르텍의 여행기<조선 1894년 여름>에서 “1890년까지 관직은 2년 또는 3년 단위로 팔렸다.이 기간이 끝나면 지역의 모든 관리들은 관찰사에 의해 새로운 관리로 대체되었다.하지만 민씨일파가 임기를 1년으로 줄이자,관리들은 과거 2~3년 동안 해 먹은 것을 1년동안 마쳐야 했고,그렇게 착취는 더 가혹하게 이어졌다.”


    <구한말 조선의 모습을 풍자한 그림>



    민영휘(1852~1935)가 평안감사로 부임하자 먼저 부호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그들의 재산 상태를 파악한 후 그 부잣집을 방문한다.이때 감사는 조정에서 당신을 발탁하여 어느 군의 수령으로 임명하게 되었다느니 과거시험에서 선발하게 되었다하며 돈을 준비하라고 하면서 축하 인사말을 건낸다.이 말을 들은 부자는 감격하여 사례금 액수를 묻는다.이때를 기다렸던 감사는 부자의 재산상태를 파악하고 있는 터라 엄청난 금액을 제시한다.하지만 십중팔구 매관매직 금액에 놀란 부호가 벼슬직을 사양하면 이미 청탁을 넣었는데 무마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해서 처음가격의 반액 또는 1/3을 위약금조로 물려 착복했다는 것이다.이것이 관직을 마다(그만두다)하는 대가로 돈을 긁어들인다 해서 항간에 마다리수법으로 알려진 부정축재 방식이었다.


    민영휘는 고종에게 금송아지까지 상납했다 할 정도이니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민씨 척족세력 민형식(1859~1931)은 중전을 등에 업고 국고에서 본인 주머니로 치부한 금액이 70만냥으로,당시 국가의 세입은 480만냥이었는데 국가 예산의 1/7 수준이였으니 막대한 금액이었다.민비 본인의 사치 또한 상상을 초월했으니,갑신정변 직 후 칼에 찔려 죽기 적전의 민비의 조카 "민영익" 치료해준 알렌에게 사례금으로 20만냥(현재가치:50억원)을 쾌척했다.그리고 큰 손으로서의 모습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그녀의 주치의였던,릴리어스 언더우드는 <조선견문록>에서 결혼 축의금으로 국고 세입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00만냥을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일본과 청국의 경제적 침투는 조선경제를 파탄시켰다.개항부터 청일전쟁시기까지 열강이 조선에서 자행한 경제침탈의 기본구조는 정규무역·밀무역을 통한 무역에 의한 경제침탈과 자원수탈·철도·해관·전선부설권 등을 둘러싼 이권에 의한 경제침탈,그리고 차관·투자 등에 의한 경제침탈이었으며 이들은 상호 유기적인 관련 속에서 작용하였다.백성들의 이와 같은 어려움에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고 오로지 권력유지만을 위해 열강들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장기간 이어진 흉년과 지방관들의 수탈 속에 분노한 백성들의 반감은 날로 높았갔고 작은 불씨라도 생기면 폭발할 긴장된 분위기는 점차 고조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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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서울데일리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0-07-05 01:1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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