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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을 알면 한국 현대사가 보인다
간도특설대
2020-07-12 오후 8:08:59 서울데일리뉴스 강문갑 mail mkkang117@daum.net

    1908 3살의 어린 나이에 청나라 황제로 즉위한 푸이.황제즉위 3년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는 멸망하고 푸이는 황제자리에서 물러난다.1905년 러일전쟁 종전후 1905 9월 포츠머스 강화조약에서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조선은 물론 여순과 대련의 조차권과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까지 양도받고 ,대련은 일본 관동군이 관리하게 된다.1914~1918년 까지 제1차 세계대전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은 일본은 1929년 불어 닥친 경제 대공황으로 일본정부는 2개 사단을 없애는 등 국방예산을 대폭 감축한다.이에 불만을 갖게 된 일본관동군 참모 이시와라 간지는 만주를 점령해야 조선통치가 안정될 것이며,러시아와 중국 진출에 유리할 것이다.” 고 주창하였다.



    일본 정부는 만주침략에 반대했지만,1931 9월 봉천 북쪽 유조구(柳條溝)에서 만주 철도의 선로가 누군가에 의해 폭파되었다.일본 관동군은 일본 정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이것이 중국군의 소행이라 하여 즉시 군사 행동을 개시하였다.관동군은 1932 2월 하얼빈을 점령함으로써 만주의 대부분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으며,1932 3월 만주국의 수립을 내외에 선언했다.국제연맹의 만주 침략 비난을 우려해 푸이를 만주국 집정관으로 내세운 관동군은 만주국은 푸이가 청나라 부활을 꿈꾸며 세운 나라로 우리는 푸이를 도와줬을 뿐이다.”며 만주국 수립을 합리화시켰다.푸이는 실권없는 허수아비로 사실상 만주국은 일본 관동군이 통치한 나라였다.

    <좌:만주국(1932~1945) / 우: 만주침략을 기획한 관동군 참모>



    1945년 일제의 항복과 함께 패망하기 까지 병영국가 만주국의 13년은 우리 현대사에도 재현되었다.수시로 열린 만주국 반공대회건국체조의 보급만주국 산업개발 5개년 계획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만주국과 일본에서 활동한 박정희는 만주국의 경험과 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만주국이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 등 항일 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1938년 조선인 중심으로 조직한 간도특설대는 1939년부터 본격적인 작전을 수행하였으며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존속한 750여 명 규모의 대대급 부대였다.간도특설대는 하사관을 포함한 사병은 모두 조선인이었고,장교는 일본인과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간도특설대의 토벌 대상은 연변 일대를 무대로 무장 투쟁을 벌이고 있는 조,중연합 독립군이었다. 식민지인을 이용해 식민지인을 탄압하는 일본제국주의의 방식을 실천하는 특수부대였던 것이다.이 부대가 쏜 총탄에 쓰러진 항일투사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이들에게 살해된 항일무장세력과 민간인은 172명에 달했으며,그 밖에 많은 사람이 체포되거나 강간·약탈·고문을 당했다"<친일인명사전>은 전한다.<친일인명사전>은 일본군에 복무했던 사병은 친일파로 분류하지 않고,소좌 이상만 등재하였으나 간도특설대는 사병을 포함해 전원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한 것은 그만큼 간도특설대의 악명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간도특설대 만행과 관한 몇가지 사례로는 1939 5월 안도현 서북창에서 산나물을 뜯는 민간인을 죽여서 불에 태워버렸으며,1939 7월 항일연군과 교전중 희생된 항일연군 전사자의 배를 가르고 간을 꺼내어 빈 통조림 통에 넣었다.또한 1941년 안도,돈화,화전 등 3개 현에 대한 토벌 중 동북항일연군 1명을 군도로 머리를 베고 시체옆에서 목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고,일본군과 만주군,간도특설대의 연합 작전에 밀려 동북항일연군의 총사령관이 사살되고 남은 부대는 소련으로 넘어가면서 자취를 감췄다.간도특설대에 복무했던 대원들은 해방 후 반민특위 등 친일청산작업이 실패한 가운데,대한민국의 국군에 들어갔다.

    <좌:간도특설대의 학살 만행 / 우:1938년 간도특설대원 모집 기사>



    <간도특설대 부대가> “시대의 자랑,만주의 번영을 위한 징병제의 선구자,조선의 건아들아! 선구자의 사명을 안고 우리는 나섰다.나도 나섰다.건군은 짧아도 전투에서 용맹을 떨쳐 대화혼(천황의 뜻을 받드는 것)은 우리를 고무한다.천황의 뜻을 받든 특설부대,천황은 특설부대를 사랑한다.” 부대가 가사에서 간도특설대의 정체가 분명하듯 독립운동과 항일항만주운동의 탄압에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역사학자 필립 조웰은 일본 관동군의 만주 점령 기간 동안 간도특설대는 잔악한 악명을 얻었으며,그들이 통치하는 광범위한 지역을 황폐화시켰다.”라고 했다.


    프랑스의 앙리 페탱 원수는 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을 격퇴해 조국을 구한 ‘국부’로 불렸으나 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 독일에 부역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인물이다.단죄를 주도한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국가는 애국적 국민에게 상을 주고 민족 배반자에게는 벌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이런 단순명쾌한 논리가 한국에서는 통용되지 않았다.식민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한국 현대사는 왜곡과 굴절을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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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서울데일리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0-07-12 20:0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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