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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왜란-1894년 일본의 조선침략.5
1차 공주전투-조일연합군과 동학농민군
2020-09-02 오후 12:10:45 서울데일리뉴스 강문갑 기자 mail mkkang117@daum.net

    18949 10,삼례(완주군 삼례읍)에서 전봉준은 4천여 명의 동학군이 집결한 가운데 재기포를 선언하고 각 도소에 격문을 보냈다.례의 재기포는 "조선에 불법침입해서 일본이 조선을 반식민지로 예속시키려고 청일전쟁까지 벌이고 있는 일본침략군을 조선땅에서 몰아내어 조국의 자주독립을 굳게 지키려는 동학군의 항일무장투쟁이 정식으로 선언된 것이었다." 동학군은 청일전쟁 와중에도 일본군 군용전선의 절단과 병참부에 대한 습격 등 반일저항을 계속해나갔다.

    <동학농민군 봉기 지역>


    척왜를 슬로건으로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군이 재봉기하자 일본은 고종을 압박하여 일본군에게 적대하는 동학군을 반란군으로 규정토록 강요하였고,9월 하순 부임한  일본공사 이노우에는 대본영에 동학군 진압을 위한 1개 대대 병력 파견을 요청하였다.고종은 9 22일 교서를 통해 ’처음 봉기가 봉건적 탐학으로 일어났던 점을 인정하였으나 이제는 양민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비도들이 일으킨 난,패역이라고 규정하고 귀화하지 않고 왕명을 거역한다면 주멸(죽여 없앰)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고종은 신정희(1833~1895)를 순무사로 삼아 동학군을 토벌토록 하였다.이로써 전주화약을 통해 동학도와 협력할 것을 합의했던 조정은 일본의 압박에 의해 동학군을 토벌키로 하였다.9 29일 대본영은 동학군 토멸을 명령하고,10월 초,동학군 토멸부대인19대대를 파병하였다.15일 용산을 출발한 제19대대는 17일부터 삼로로 나누어 서로 분진대는 수원과 천안,공주를 거쳐서 전주로,중로 분진대는 청주를 거쳐 성주로,동로 분진대는 충주,문경을 거쳐 대구로 향했다.아울러 경기도,황해도,강원도,경상도 지방의 동학군 진압에는 제18대대와 각지의 일본군 병참부 수비병들이 투입되었다.

    <일본군 삼로 진군로>


    동학 최고 지도자 최시형은 무력항쟁을 반대하였으나 항일구국투쟁이라는 명분 앞에 승인하여 청산(충북 옥천군 청산면)에서 출정식을 거행하고,손병희(1861~1922)에게 호서 동학군을 이끌고 호남 동학군과 합세하여 무력항쟁에 나설 것을 명령하였다.마침내 1016일 논산의 노성 소토산(논산시 부창동 일대)에서 호남 동학군과 호서 동학군이 연합하였다.16일 양호창의영수(전봉준과 손병희)의 이름으로 충청감사 박제순(1858~1916)에게 글을 보내 충의의 입장으로 돌아와 항일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일본의 도둑들이 군대를 움직여 임금을 핍박하고 백성을 걱정스럽게 하니 어찌 참는단 말인가.임진왜란의 원수를 초야에 있는 필부나 어린애까지도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는데 하물며 조정의 녹을 먹는 충신이니 우리 무지렁이들보다 몇 배 더 하지 않겠는가.”을사오적의 하나로 오명을 남긴 박제순은 일본공사 이노우에의 지시를 충실히 따라 동학군 타도에 앞장선다.


    동학군은 일본군과 관군에 대응하기 위해 호남과 호서의 동학군을 다시 배치했다.우선적으로 동학군 4천 명을 목천 세성산(219m)에 주둔시켰다.세성산 주둔은 일본군과 관군의 남하를 저지함과 동시에 한양으로 향하는 연합부대의 북상로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그러나 10 21일 관군 800여 명의 기습으로 전사자 370,부상자 770명 등 일방적으로 패전하였다.목천 세성산 전투는 북상로가 차단되어 동학군의 제1진이 참패한 전투로,동학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세성산>


    세성산이 죽은 시체로 산을 이루어 시성산이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많은 동학군이 죽음을 당했다.동학군의 1차 공격목표는 충청감영이 있는 공주였다.공주는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이자 삼면이 산으로 둘러쳐 있고,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전봉준은 공초에서 "공주감영은 산이 막히고 강이 둘러있어 지리가 뛰어나 이 곳을 차지하고 굳게 지킨다면 일본군도 쉽게 빼앗지 못할 것이므로 공주에 들어가 일본군에 격문을 보내 버텨보고자 했다"고 하였다.


    공주성 점령의 목적은 경복궁 탈환의 발판을 마련하고,농성전과 집회를 열어 반봉건 반외세적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었다.2만여 명의 동학군 연합부대는 세성산 전투가 벌어진 10 21일 공주 공략을 위해 논산 소토산을 출발 22일경 경천(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을 점령하고 군영을 설치했다.경천에 주둔한 전봉준은 부대를 둘로 나누어 호서 동학군은 이인(공주시 이인면)으로 나아가 공주의 남쪽을 공격하기로 했고,호남 동학군은 판치(널티,무너미고개)를 넘어 효포와 웅치(곰티,능티)로 공주의 동쪽을 공격하는 전략을 세웠다.


    공주성을 둘러싼 최초의 전투는 이인에서 벌어졌다.이인역에 진을 치고 있던 농민군은 10 23관군과 일본군삼면에서 공격하자 동학군은 취병산에 진을 치고 이인역을 거점으로 관군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다.이인을 점령한 관군과 일본군이 빠져나가자 후퇴했던 동학군은 전진해 다시 이인 일대를 차지했다.화력이 우세한 관군과 일본군도 동학군을 막아내려 했지만,동학군의 인해전술로 관군과 일본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이인전투가 전개된 이인역 터>

    23일 호남 동학군이 판치(널티)넘어 효포를 향해 올라가자 효포에 배치되었던 관군은 겁을 먹고 도망쳐버렸다.그래서 호남 동학군은 전투를 하지 않고 효포 일대를 장악하였다.24일 새벽에는 한다리(대교)까지 진격하여 진을 치고 있던 북접 옥천포의 동학군이 관군의 기습을 받고 20여 명의 전사자와 6명의 생포자를 남긴 채 퇴각함으로써 협공작전은 차질을 가져 왔다.효포일대를 장악한 호남 동학군은 효포에서 공주로 넘어가는 웅치를 차지하기 위해 전력을 집중했다.


    웅치를 넘으면 공주 성내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서로 분진대가 선봉에 서고,관군까지 합세하여 웅치를 방어하였다.한낮이 지나도록 전개된 전투는 근대적 군사 훈련과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파상 공격을 받은 동학군이 7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경천까지 후퇴하고 말았다.동학군의 1차 공주 공격은 일본군의 근대화된 화력과 정부군의 지형을 이용한 포위,기습공격에 밀려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전봉준은 동학군의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다시 논산 방면으로 후퇴하였다.


    논산으로 물러난 전봉준은 흩어진 병사들을 불러 모으는 한편,각지에 원병을 요청하며 동학군을 결집시켰다.논산일대에서 재결집한 동학군이 2만여 명에 이르자 경천으로 다시 진출하여 군량을 나르고 포대를 설치하며 전투를 준비하였다.11 8일 동학군은 두 갈래로 나누어 제1대는 경천에서 판치를 거쳐 공주성의 남동쪽으로 진격했고,2대는 이인에 주둔하고 있던 관군을 남서쪽에서 압박하기 시작하였다.오후 3시경 제1대는 먼저 판치를 넘어 효포를 공격해 효포 능치 일대의 산 위로 올라가 깃발을 꽂고 진세를 과시하며 관군과 대치하였다.

    <제2차 공주전투 동학군 진군로>


    2대는 이인에 주둔하고 있던 관군을 우금치까지 후퇴시키며 공세를 펼쳤다.우금치가 위급해지자 11 8일밤 일본군 모리오 대위는 우금치 옆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올라가 진을 쳤다.밤새 대치하고 있던 양군은 날이 새자 결전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11 9일 오전 양군의 배치를 보면,동학농민군은 동쪽의 판치부터 서쪽의 봉황산까지 걸쳐 포진했고,특히 주력부대는 우금치산 전방 약 5m에 있는 산 위로 전진해갔다.이에 대응하기 위해 조일연합군은 금학동과 능치,효포,우금치,견준봉 등지에 관군 3천여 명과 일본군 200~300여 명을 배치하여 동학군과 대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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