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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여수 그리고 침묵(1)
여순사건-8일간의 전쟁
2018-12-29 오전 12:15:56 강문갑 기자 mail mkkang117@daum.net

    전라남도 여수는 지난 2012년 세계 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이탈리아 나폴리와 브라질의 리우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미항'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몇 해 전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단숨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하지만 여수에는 슬픈 현대사가 서려 있다.70년이 넘도록 진실규명은 커녕 사실조차 입 밖에 내기 꺼리는 참혹한 역사를 품고 있는 고장이기 때문이다.여수는 제주에서 일어난 '4.3 항쟁'을 진압하라는 미군정(1945.9.8~1948.8.15)과 이승만의 출동 명령을 거부하며 미군 철수와 통일 정부 수립의 기치를 내걸고 시작된 '여순 사건(여수·순천 사건)'이 발화된 곳으로 이 사건은 제주도 4.3항쟁과 더불어 해방정국에서 발생한 최대의 민족사적 비극이었다.

    <여수 밤바다>

    15광복 뒤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상황이 고착되어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자유 총선거가 불가능하게 되었고,UN총회에서 남한만의 단독선거 실시가 결정되자 남한 내 정치,사회단체 사이에서 심각한 분열이 일어났다.이러한 상황에서,미군정은 남한 단독 총선거를 진행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자,남한에서는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하여 5 10일 단독 총선거를 치르기로 하였다.이는 남한 단독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으므로 민중은 단독선거를 목숨 걸고 반대했다.민중이 단독선거를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분단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에 있을 것이다.1945년에 군사적 이유로 38선이 그어졌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남북을 자유롭게 오갔다고 한다.통제와 검색이 심해져 몰래 넘나들때도 분단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UN이 단독선거를 결정하고 나서야 분단을 현실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또한 잘살기 위해서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일제강점기 남과 북 경제구조의 차이가 영향을 줬을 것이다.‘남의 쌀, 북의 전기’라는 통일운동의 구호가 이후에도 한참 등장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무엇보다 분단은 전쟁의 위험을 높이는 일이었다.이러한 이유로 민중은 5.10 선거를 거부했지만 이 땅의 선거는 그 뜻을 저버리고 반민주적으로 출발했다.

    <좌:1948.5.10 단독선거 투표/우:14연대 장병들>

    제주도에서는 ‘남한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외치며 무장자위대가 봉기함으로써 '4·3사건'이 발생하였다.무장봉기가 진정되지 않자 1948 10 15일 여수 신월리에 주둔하고 있던 제14연대는 육군사령부로부터 19일 오후6시를 기해 1개 대대를 제주도로 출동시키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지만,이 명령은 14연대 내의 장병들을 갈등속으로 몰아넣었다.결국 이들의 선택은 여수에서의 봉기였다.10 19일 중위 김지회(?~1949)와 상사 지창수(1906~1950)를 비롯한 14연대 병사들은“우리는 동족상잔의 제주도 출동을 반대한다”는 주장과 남로당의 선전 구호들을 외치면서 다른 군인들을 선동하여 제주사태의 진압군으로 가는 대신 여수에서의 반란군으로 돌변하게 되었다.14연대 봉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제주도 파병 반대였지만,군과 경찰간의 갈등도 주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미군정은 경찰에게는 창설 때부터 새 제복과 미제 카빈소총을 지급한 반면 경비대에게는 일반 군복과 일제 소총을 지급했으며,이승만 정권 치하에서의 경찰은 일제 경찰을 뺨칠 정도로 강퍅했다.국방경비대는 경찰을 민족과 국가를 팔아먹은 매국노 친일집단으로 간주했다.반란 주동자들이 다른 군인들을 선동할 때 경찰을 타도하자고 외친 것도 바로 그런 악감정에 호소하고자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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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서울데일리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8-12-29 00:1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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