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ㆍ전체기사
기사제보
광고문의

가장많이 본 기사
이메일 프린트 퍼가기 글자크기 원래대로 글자크기 크게 글자크기 작게
월침침야삼경 -밀회
1793년 8월 21일 밤 11시 50분
2020-07-24 오후 11:38:23 서울데일리뉴스 강문갑 mail mkkang117@daum.net

    18세기부터 19세기 초에 풍속화가 가장 융성하게 발전하였다.풍속화란 궁궐이 아닌 민간의 사람들이 사는 평범한 생활 모습과 풍속을 그린 그림이다.그만큼 풍속화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 드러나므로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조선후기 3대 풍속화가로 불린 신윤복(1758~1814년경)은 다양한 색채를 사용해서 유교중심의 사회였던 당시에 금기시 되었던 남녀 간의 연애와 풍류생활 등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조선시대 풍속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월하정인>은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를 엮은 연작 화첩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에 수록된 것으로,당시 화첩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가운데가 접혀있지만,국보 제1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월하정인도:신윤복>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월하정인>속으로 들어가보자.조각달이 어둠을 비치고 있는 달밤,두 남녀가 어두운 담 모퉁이를 돌아 은밀한 만남을 가지고 있다.다소곳하게 쓰개치마를 둘러쓴 여인은 수줍음 반 교태 반 야릇한 정이 볼에 물들었다.옥색 치마에 자주색 저고리 깃,끝동을 댄 저고리를 입은 것과,치마와 동색인 한층 연한 쓰게치마가 머리 위로 높이 올라가 있다는 것은 큰 가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가채가 크다는 것은 부를 상징한다.따라서 권세가인 부잣집 애첩으로 짐작된다.남자는 갓의 크기가 유난히 크고,관자가 없는 것으로 볼 때,아직 과거에 급제하지 않은 권문세가 도련님이란걸 짐작할 수 있다.반면 갓끈을 묶은 본새하며 흐트러진 의관이 눈에 거슬리지만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남자는 그윽한 눈길로 여인을 바라보면서 오른손에 초롱불을 들고 왼손으로 허리춤을 뒤적인다. 아쉬움에 사랑의 정표라도 주고가려는 것일까? 남자의 발걸음은 집으로 향하나 얼굴과 몸은 여인 쪽으로 돌아 연정의 눈빛을 담아 여인을 응시하고 있다.헤어져야 할 시간은 이미 지났지만 남자는 여자와 헤어질 맘이 없는 듯한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인 역시 몸은 돌리고 있지만 버선 신은 발이 남자에게 향하고 있는 것은 마음이 남자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그림속의 화제(畵題) 월침침야삼경(月沈沈夜三更)은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야삼경(夜三更)은 자시(子時)로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의 시간이다.



    <월하정인>의 키워드는 밀회이다.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불륜이다.그 근거는 정상적인 관계에서는 삼경(11~새벽 1)에 만날 수가 없다.당시 조선시대에는 통금시간이 밤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였기 때문이다.그림속의 시간은 야3(11~새벽1)이므로 통금 시간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만약 삼경에 돌아다니다가 순라꾼들에게 발각되면 경수소로 잡혀가 날이 새면 곤장 30대를 맞고 풀려났다.때문에 삼경에 만나는 사이라면 두사람이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되는 관계이거나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그림 전체를 유쾌하게 만드는 또 다른 내용의 화제 양인심사양인지(兩人心事兩人知) ‘두 사람의 속마음은 두 사람만 알리’로 이 화제가 빠지면 이 그림은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기 어려웠다.

    <월하정인도 화제>


    조선시대의 3대 풍속화가로 알려진 신윤복은 그 활동에 대한 기록이 없어 작품들의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 없었다.다만 일부 작품에 기록된 간기(刊記)를 통해 19세기 초에 활동한 것으로 짐작될 정도였다.하지만 국내외 어느 작가의 그림 속에도 <월하정인>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모양의 달이 그려져 있지 않다.때문에 <월하정인>에 그려진 달은 초승달이 잘못 그려진 것으로 여겨져 왔다.일상적으로 밤에는 달의 볼록한 면이 위를 향할 수 없기 때문이다.신윤복은 왜 저런 모양의 달을 그렸을까? 그림 속의 달 모양은 지구의 그림자가 달의 아랫부분만 가리고 지나가는 부분월식이 일어날 경우에만 볼 수 있다.


    신윤복이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약 100년간 일어난 부분월식을 조사해 본 결과 1784 8 30(정조8,신윤복 26) 1793 8 21(정조17,신윤복 35)두 번에 걸쳐 그림과 같은 부분월식이 있었다고 한다.월식이 일어나더라도 기상 현상 등의 이유로 실제로는 관측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당시 일식과 월식은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천문현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거의 빠짐없이 기록이 남아 있다.1784년에는 8 29일부터 31일까지 한양 지역에 3일 연속 비가 내려 월식을 관측할 수 없었다.두번째 부분월식이 일어난 1793 8 21일은 음력으로 7 15일이다.이 날은 오후까지 비가 오다 그쳐서 월식을 관측할 수 있었다.

    <1793년 8월 21일 부분월식>


    <승정원일기> 1719책에 “715일 밤 2경에서 4경까지 월식(月食)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夜自二更支四更,月食).일기체 형식의 연대기인<일성록>에도“월식이 있었다.처음에는 동남쪽이 이지러졌는데 2()1()이었고,정남쪽이 매우 많이 먹힌 것은 3 2점 이었고,서남쪽이 둥글게 된 것은 4 3점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정조17,1793 7 15 ,月有食之 初虧東南二更一點食甚正南三更二點復圓西南四更三點)신윤복은 그림속에 달을 자주 그렸으며 그 모양이 자주 변했던 것을 보면 아마 실제 달을 보고 그렸을 것이다.당시는 사물을 사실 그대로 그리는 진경산수의 시대였기 때문에 <월하정인>부분월식이 있던 1793 8 2111 50분 실제 상황을 묘사한 작품일 것이다.


    <서울데일리뉴스 강문갑의 다른 기사 보기>
    <저작권자©서울데일리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0-07-24 23:38 송고
    월침침야삼경 -밀회
    대표인사말 | 광고/제휴 안내 | 이용약관 | 청소년보호정책 | 개인정보처리방침
    서울데일리뉴스 등록번호 : 경기 아51976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미금일로90번길 32, 335호 (구미동)   TEL : 031-604-2221
    발행인 : 정미숙, 편집인: 박선철,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선철
    Copyright© 서울데일리뉴스. All right reserved. mail to : scottie_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