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가 구름인지 그림인지

이양선이 출몰하다
2020-03-30 오전 11:19:43 서울데일리뉴스 강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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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부터1860년까지 계속된 2차 아편전쟁에서 청나라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게 패함으로써 러시아의 중재하에 베이징 조약이 체결되었다.러시아는 이 조약을 중재한 대가로 연해주를 할양받고,조선과 국경을 맞댄 러시아는 고종 즉위초 네 차례에 거쳐 국경을 넘나들며 통상을 요구하였다.이에 대원군은 천주교에 대한 신앙의 자유를 주는 조건으로 프랑스 세력과 연합하여 러시아의 남하를 차단하려는 실용적 외교정책을  갖고있었다.


천주교는 철종 말기 탄압이 느슨해진 틈을 타 차츰 교세를 넓혀 나갔고,유교를 건국이념으로 하고 있는 조선왕조의 입장에서 제사를 거부하는 천주교가 전래되자 배격하는 위정척사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반대원군 세력은 “대원군이 천주교와 흥정을 하려 한다.서양인을 물리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며 정치적인 압박을 가하였다.1866년 초,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 9명을 비롯해 조선인 천주교도 다수를 처형하였다.이 사건으로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서양 세력과 벌인 전투 병인양요가 일어난다.

<양요의 전개>


18669월 프랑스 로즈제독의 함대가 내침하여 강화도를 점령하고 한성으로 진격하자,초관이었던 한성근(1833~1905)은 문수산성에서, 양헌수(1816~1888)부대정족산성 전투에서 격파하여 퇴각시켰고, 프랑스 군은 퇴각하면서 강화도 일대를 파괴하고 외규장각의 고도서 345권 등 문화재를 약탈해갔다.약탈한 도서들은 1867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보내졌다.


이후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1923~2011)박사가 찾아낼 때까지 110여 년 동안 프랑스 국립도서관 창고에서 '중국서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방치돼 있었다.80년대 박병선 박사에 의해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해제(解題)가 발표됐고,국내 학자들도 논문을 발표하면서 외규장각 도서 반환 움직임이 일어났다.


90년대 고속철도 사업자로 프랑스 떼제베(TGV)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미테랑 대통령은 93,프랑스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해 외규장각 고서반환의 상징적 조치로 순조 임금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장례절차를 기록한 <휘경원원소도감의궤-상권>1권만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전달되었다.2011년 영구 대여형식으로 반환된 297권의 외규장각 의궤들은 5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것과는 달리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 상권은 3년마다 자격을 갱신하는 영구 임대 형식으로 한국에 전달되었다.

<좌:박병선 박사 / 우:외규장각 의궤>


18668월에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에서 통상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행패를 부렸는데,평양감사 박규수(1807~1876)와 관민들의 저항으로 제너럴셔먼호 선원은 모두 참변을 당하고,셔먼호는 평양포구에 나타난지 13일 만에 전소되고 말았다.1868년에는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두 번에 걸친 통상 요구가 거절되자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다 묘의 단단한 구조로 실패하고 돌아갔다.


병인양요 이후 대원군은 기존의 중앙군인 5군영에 대한 재정비와 강화군영의 군사력 강화를 위해,'수뢰포'개발,13겹의 면포에 솜을 넣어 최초의 방탄복‘면제배갑(綿製背甲)을 만들었으나 군인들이 착용하고 전투에 임하기에는 두꺼웠고,한여름에는 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1871년 신미양요때 전투를 벌이던 조선군이 면제배갑을 착용했으며,불에 탄 전사자가 많았다는 기록을 볼 때 전투 시 발생하는 화재에는 취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1869 3월에는 러시아 군함 8척이 영종도 앞 바다에 나타나 수군을 죽이고,다음 해에는 주일 독일공사가 탄 군함이 부산 앞 바다에서 통상을 요구하는 등 몇 년 간 외국 함선의 출현이 그치지 않았다.1871 5월 미국은 4척의 군함과 12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강화도 부근에 도착한 로저스 제독은 초지진과 덕진진을 공략하고,광성보를 공격하였다.광성보에는 어제연(1823~1871)이 약 1,000여 명의 경군을 거느리고 배수진을 치고 결사 항전하였으나 350여 명의 많은 피해를 내면서 함락되고 말았다.

<좌:면제배갑(세계최초의 방탄복)/우:어제연 장군기>


미국은 전투에서 승리하였지만 조선과 협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고,7 3,함대를 철수시켰다.미군이 전리품으로 약탈한 어제연 장군 수자기는 장기대여 형식으로 반환받아 강화박물관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다.미국이 무력으로 일본을 개항시켰던 것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실패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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